아마추어 입문 사례
이모씨 파란만장 아마추어무선 입문 일대기
1. 자격증을 따자고 결심한 이모씨
이모씨는 어느날 유튜브를 보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에 눈이 갔다.
"세상의 모든 전파를 수신해보자"라는 영상이었다. 제목의 그럴싸함에 이끌려 이모씨는 스크린을 지그시 눌렀다. SDR(Software Defined Radio)이라고 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영상을 보며 이모씨는 예전 대학 입학 때 HAM이라는 아마추어 무선 동아리를 떠올렸다. 이모씨가 전산연구회라는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곳 동아리방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이어지는 "아마추어무선(햄)자격증 무시험 취득" 영상을 보고 나서 잠시 입맛을 다시던 그는 뭔가 결심한 듯 인터넷에서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예전에 한번 자격을 따볼까 했지만, 직접 공부하기는 막막하고, 강습을 받자니 강습비가 아까워서 미뤘던 아마추어무선 자격에 도전해 볼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강습은 두 종류가 있었는데, 3급과 4급이 있었다. 가만 보니 4급은 강습만 받으면 바로 자격증이 발급되지만 무전기 송신출력 제한이 있다보니 손으로 들고 다니는 무전기 정도만 쓰겠다 싶어 기왕이면 주파수 대역도 어느정도 보장되고 출력도 늘어나는 3급을 듣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ㅇㅇ지부 아마추어무선 3급 강습이 몇 주 뒤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 그는 전화를 바쁘게 돌리기 시작했고, ㅇㅇ지부와 통화가 안되자 연맹본부에까지 전화를 하여 4급을 듣고나서야 3급을 들을 수 있는지 어리석은 질문까지 던져가며 이것 저것을 물어보았다. 연맹에서는 마침 ㅇㅇ지부가 쉬는 날이라서 강습의사를 전달해 주겠다고 했다. 그 후 강습에 필요한 돈과 서류를 보냈다.
2. 쇼핑중독에 빠진 이모씨
이모씨는 이제 몇주 남은 강습까지 하릴없이 인터넷에서 쇼핑몰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사이트는 알리익스프레스, 이베이, 아마존이었다. 그리고 별다른 정보 없이 서쪽나라 바오펭 무전기를 사는 실수를 범하고, 이베이에서는 $130에 Alinco DJ-MD5를 덜컥 낙찰받아 버린다. 게다가 겁도 없이 Bencher BY-1을 연달아 두 대나 낙찰시켜 버린다. 쇼핑에 재미를 붙인 그는 이어서 Diamond SX-600을 $157에 낙찰받아 버린다. 입맛을 다시던 이모씨는 이번에는 당근마켓에서 잠복하면서 새 것 같은 GSV3000을 13만원에 사버리고, 하이탑과 소리전자 중고장터를 헤메다 MFJ-259를 사버린다. 이쯤해서 이모씨 머리에 전구가 반짝 켜졌다. '아, 더하면 안되겠다.' 쇼핑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카드사는 웃고 이모씨의 지갑은 비어 있었다.
3. 자격증을 따려는 이모씨
강습날까지 인터넷 서핑을 통해 자료를 긁어 모은 이모씨는 마침 눈이 온세상을 덮은 어느 겨울날 아침 ㅇㅇ지부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강습은 이틀에 걸쳐 이루어졌고, 첫날 무선설비취급방법, 둘쨋날 전파법규와 통신보안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강사분들의 열정적인 강의 덕분인지 가끔 졸곤하는 이모씨가 그날 따라 웬일로 또렷한 눈을 유지하였다. 그는 자체적으로 치뤄지는 시험도 무난하게 치루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이제 남은 것은 아마추어무선기사 시험이었다. 시험은 상시로 이루어지는 정기시험과 출장검정이라는 임시시험이 있는데 연맹에서 출장검정 날짜를 조만간 잡아 알려주겠다 했다. 그로부터 몆주가 지나지 않아 이모씨의 모습은 시험장에서 볼 수 있었다. 전날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인지 아니면 잠을 설쳐서인지 모르지만 눈에 핏줄이 서 있는 모습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조심하면서 시험장에 입장한 그는 거의 몇년만에 치루는 공적 시험이라선지 시험지를 받기 전 살짝 설레는 것 같았다. 시험지를 받기 전 어떤 문제가 나올지, 과연 기출문제에서는 얼마나 나올 것인지 궁금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문제지가 나눠지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이모씨는 시험시간 절반이 되지 않아 문제를 다 풀었고, 시험시간 절반이 넘은 때 문제지를 제출하고 시험장을 빠져나갔다. 시험에 합격할 시 자격증을 바로 그날 발급받을 수 있다 하여 기다리는 쪽을 선택한 그는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근처 식당을 찾아 끼니를 해결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 가서 중고로 나온 책과 구제물건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가게를 둘러보다 보니 어느덧 발표시간이 지나 시험장으로 향한 이모씨는 자신의 이름을 합격자 명단에서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쯤 지나 나온 아마추어무선 3급(전화) 자격증을 몇번이고 주머니에서 꺼내서 들여다보며 집으로 향했다. 그의 등 뒤에서 달이 서서히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4. 기다림에 지친 이모씨
성격급한 이모씨는 얼어붙은 몸을 녹이며 그날 저녁 바로 무선국 개국신청을 하기위해 웹브라우저 주소창에 emsit.go.kr을 타이핑하였다. 아즐사 게시판을 보면서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접수한 뒤, 하루만에 자료보강을 하라는 고지를 받아 차량등록증과 기술자격증 사본을 올리고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이모씨는 대쪽같이 마르기 시작했다. 매일 emsit에 들어가서 확인을 해도 여전히 '신청완료'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며, 내일은 접수확인이라도 되겠지 하며 기다림-조바심-확인-체념의 사이클을 반복했다. 어떤 때는 '아니 왜 아직까지 처리를 안해'하는 의문과 '뭐 신청이 많이 밀려서 그런다니 이해를 해야지' 하는 이해 사이를 오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모씨는 결국 사이트 주소를 가지고 노는 경지에 이르렀다. 사이트 주소가 emsit인 것은 접수 후 이(e)미(m) 깔고 앉았다(sit)는 건가 아니면 IT's tIme to Stop Moving Emotionally를 거꾸로 한 것일까 아니면 Endurance Measurement, shit!의 약자인가 하는 망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런식으로 하루하루 피마르는 일주일이 지나자 참다못한 그는 담당자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 왈, "신청이 많이 밀렸고, 이번에 신청하실 때 차량번호를 넣으셨는데, 경찰조회에 시간이 걸려서 그렇습니다" 그렇다. 모바일로 운영할 것도 아닌데 넣은 차량번호가 문제였다. 결국 이모씨는 그 후로도 1주를 더 기다려야 했다. 이모씨는 그간 심리적으로 대쪽과 젓가락을 지나 이쑤시개가 되었다.
5. 그동안 기계 셋팅에 빠진 이모씨
개국도 안되고 기다림에 무료해진 이모씨는 이미 한참 전 도착해서 먼지가 쌓여가던 바오펭과 Alinco 무전기를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매뉴얼을 숙독하기도 하고 뭔가 궁시렁거리리도 했다. "뭐 이리 복잡하고 어렵지", "음, 이건 이런 기능이었군"하는게 그 궁시렁거림의 내용었다. 그는 PTT버튼을 누르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와 버튼에 손이 가는 것을 애써 참으면서 슬쩍슬쩍 내부 파라미터만을 변경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DMR, HF 트랜시버, 안테나에 대한 공부를 이어갔다. 이때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였을까 그는 훗날 아날라이저에 초과 전류를 보내 더미로드를 터트리는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100ohm짜리 저항이 없자 가변저항을 100ohm에 놓고 MFJ-259의 영점을 조정하는 융통성을 보이기도 했다.
6. 개국에 이은 준공검사를 한 이모씨 무선세계로 떠나다
신청한지 2주를 기다린 뒤 담당자 출장으로 다시 5일을 더 연장한다는 통보를 받은 이모씨는 해탈의 경지에 올라 구름 위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심리적으로 만수산 드렁칡이 몇십번 얽힌 시간을 경험한 뒤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경지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이 생에 나는 이 일을 못 이루고 가나보다" 체념하던 이모씨에게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다. 다음날 결재가 올라가고 그 다음날 처리완료가 떨어졌던 것이다. 침대 위에서 나무늘보처럼 엎드려 있던 이모씨는 갑자기 활기를 되찾고 KCA.kr에 바로 전화를 걸어 다음날 직접 찾아가 준공검사를 받는다. 여기까지 말하다보니 숨이 차니 이미 다 알려진 준공검사과정은 생략할까 한다. 여차저차해서 준공검사를 받은 이모씨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무선세계(On Air)의 신선(OM,YL)들을 만나러 떠났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길고 긴 여정이었다. 이모씨의 승천을 축하하듯 그날따라 극지방에는 전리층을 따라 오로라가 힘차게 부딪치며 반짝거리고 있었다.